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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소개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애절양(哀絶陽)-슬프다,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다니!

1803년 가을 다산 정약용-목민심서 권8 「첨정(僉丁)」

이 시는 계해년(1803년)가을, 내가 강진에 있을 때 지었다.

갈밭(蘆田)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등록되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 갔다.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가지고 관가에 가니, 그때까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내가 울면서 호소했지만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서 이 시를 지었다.

 

노전소부곡성장    蘆田少婦哭聲長    노전 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그칠 줄 모르고

곡향현문호궁창    哭向縣門號穹蒼    관청문을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부정불복상가유    夫征不復尙可有    정벌 나간 남편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자고미문남절양    自古未聞男絶陽    예부터 남자가 생식기를 잘랐단 말 들어 보지 못했네

구상이호아미조    舅喪已縞兒未燥    시아버지 상에 이미 상복 입었고 애는 아직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명첨재군보    三代名簽在軍保    조자손 삼대가 다 군적에 실리다니

박언왕소호수혼    薄言往愬虎守閽    급하게 가서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포효우거조    里正咆哮牛去皁    향관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 몰아가네

마도입방혈만석    磨刀入房血滿席    남편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자한생아조군액    自恨生兒遭窘厄    자식 낳아 군액 당했다고 한스러워 그랬다네

잠실음형기유고    蠶室淫刑豈有辜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 음형 당했던가?

민건거세량역척    閩囝去勢良亦慽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진실로 역시 슬픈 일이네

생생지리천소여    生生之理天所予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이치기에

건도성남곤도녀    乾道成男坤道女    하늘의 도는 아들 되고 땅의 도는 딸이 되지

선마분시유운비    騸馬獖豕猶云悲    불깐 말 불깐 돼지도 서럽다 할 것인데

황내생민사계서    況乃生民思繼序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호가종세주관현    豪家終歲奏管弦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이나 즐기면서

입미촌백무소연    粒米寸帛無所捐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균오적자하후박    均吾赤子何厚薄    같은 백성인데 왜 그리도 차별일까?

객창중송시구편    客窓重誦䲩鳩篇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워보네

 

* 절양(絶陽): 생식기를 자르다

* 노전(蘆田): 1800년대 당시 강진의 읍명(읍명)-현 강진만생태공원이 있는 남포구

* 군보(軍保): 정군(正軍)과 보인(保人:군대를 안 가는 대신에 쌀이나 베를 세금으로 내는 제도)

* 박언(薄言): 짧은 언변

* 이정(里正): 관리

* 잠실(蠶室): 누에 치는 방. 여기서는 궁형을 행하는 방,

                    궁형을 행하는 방은 누에치는 방처럼 덥게 하였다고 함

* 민건거세(閩囝去勢): 민나라에서 사내아이를 낳으면 거세하여 이웃의 강대국들에 내시로 바쳤던

                               일화를 말함

* 객창(客窓): 유배지에서 읊으므로 객이라 함

* 시구편(䲩鳩篇): 시경에 수록된 시의 편명, 통치자가 백성을 골고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시구 사이에

                         비유해서 읊음

*시구(䲩鳩):뻐꾹새-새끼를 기를 때 먹이를 공평하게 잘 나누어 먹인다고 함. *포곡(布穀)

 

당시의 군정(軍政)이 얼마나 문란했던가 이 시를 보면 짐작이 간다.

규정된 병역은 남자 양민 16세로부터 60세까지인데 정군(正軍)이 아닌 자는 군보(軍保)라 하여 세금을

내도록 했다. 세금으로 베 곧 군포(軍布)를 징수했는데 문란한 군정과 과중한 과세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죽은 사람몫까지 세금을 거둬들이는 '백골징포(白骨徵布)', 갓난아이까지 병적에 올려 세금을

징수하는 '황구첨정(黃口僉丁)'이니 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시 '애절양(哀絶陽)'은 바로 이러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고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1803년 강진 유배생활 초기에 거주했던 동문주막의 오른쪽 방-'사의재'라 부름

 

 

*위의 내용을 베껴 옮긴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ha6gh30/50105095574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이 시는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을 때 지었다. 갈밭에 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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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양 한글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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