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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소개

앙가주망(engagement)

지식인, 프랑스적인 예외

프랑스 지식인의 사회성은 프랑스 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들어온 원동력이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프랑스에서는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한다. '아는 만큼 행동하고, 사상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런 지성적 분위기이다. 특히 지성과 언론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지식인들이 언론을 사회적 공기(), 공론의 장()으로 여겨 언론 활동을 사회 참여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기 때문이다.

언론 또한 지식인들이 최대한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언론마다 자신의 이념적 색깔과 지향에 따라 그에 맞는 지성인들과의 연계를 갖는다. 좌파나 진보적 지식인들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이나 르 몽드(Le Monde)에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는 반면, 우파 지성인들은 르 피가로(Le Figaro)에 자주 글을 쓴다.

지식인은 언론을 통해 힘을 발휘하고 여론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언론사 및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던 에밀 졸라의 명문 "나는 고발한다(J'accuse)!"도 로로르(L'Aurore, 여명·새벽이란 뜻)라는 신문(1898년 1월 13일)을 통해서였다.

반복컨대, 진실은 땅속에 묻더라도 그대로 보존되고, 그 속에서 무서운 폭발력을 간직한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 진실은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이다……누가 감히 나를 법정으로 끌고 갈 것인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중.)

1898년에 발표된 에밀 졸라의 격문은 지성인들을 행동으로 나서게 했던 역사적인 명문이었다. 당국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한 에밀 졸라를 법정으로 끌고 갔고, 유죄 판결까지 내렸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보낸 에밀 졸라의 공개서한으로부터 촉발된 지식인의 항거는 끝내 권력을 굴복시켰다. 드레퓌스 사건은 진실의 승리로 끝났다.1)

드레퓌스 사건 당시 발표된 에밀 졸라의 명문은 새로운 프랑스 지식인상을 만든 계기이자 기점이었다. 지난 1998년 "나는 고발한다" 100주년을 맞았던 프랑스는 펜을 들어 사회를 움직였던 에밀 졸라를 떠들썩하게 기념했다. 프랑스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장 조레스(Jean Jaurès)는 이 사건에 대해 일찍이 "19세기 최대의 혁명적 행동"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나는 고발한다" 100주년에 시라크 대통령은 졸라가 이 서한을 작성한 파리 9구의 저택에서 현판식을 가졌고, 국립도서관은 이 서한의 원본과 드레퓌스 사건 관련 문서들을 진열했다.

사실 프랑스에서 지식인이란 뭔가 특별한 존재이다. 교육에서부터 엘리트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다, 현실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역사의 중심부를 지켜왔다. 다른 나라의 지식인들에게 사회 참여가 선택이었다면,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게 참여는 이를테면 의무였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참여가 앙가주망이다.

프랑스 앙가주망의 전통은 역사적으로 에밀 졸라, 장-폴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같은 행동하는 지성을 낳았다. "치즈가 그러하듯 지식인 역시 프랑스의 상징이며, 행동하는 지식인상은 바로 프랑스적인 예외였다"고 프랑스 언론은 이야기한다. 결국 이 예외는 하나의 모범이 되어 전세계의 지식인 사회로 퍼졌고, 오늘날 '참여 지식인상'은 프랑스적인 예외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식인, 프랑스적인 예외 (르 몽드, 2003. 12. 30., 최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