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름, 자, (아)호, 휘, 시호, 묘호
어릴 적 불리던 이름을 성인이 되면 다시 짓는데 이를 ‘자(字)‘라 하고, 여기에 격을 더해 성함, 존함으로 ‘휘(諱)’를 사용했다 한다. 그래도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호(號) 또는 아호(雅號)를 별칭(명)으로 사용했다 한다. 죽었을 때 붙여주는 이름으로 시호와 묘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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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字): 어릴 때 이름 외에 성인이 되어 다시 지은 이름을 말합니다.
2. 휘(諱): 성함, 존함. "휘는 정호이다." 이렇게 표현된 글이 있다면, 정호는 자일 수도 있고, 어릴 때 이름일 수도 있으므로, 별도로 "자(字)는 문수이다." 이런 식으로 밝혀주게 됩니다.
3. 아호(雅號): 어릴 때 이름이나, 자(字) 이외에 별칭, 애칭으로 만든 이름입니다. 우리 문화는 이름이나 자(字)를 부르는 것을 대단한 실례로 여기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다정하게, 편안하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이름이 호(아호)입니다. 자신이 짓기도 하지만, 스승이 지어주시면 굉장한 영광이 되었죠.
4. 시호(諡號): 시호는 한 마디로 죽은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을 말합니다. 왕이나 덕망 있는 인물이 사망한 뒤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올리는 칭호로 쓰는 이름입니다. 왕인 경우, 사망 후 주로 그 다음 왕이 지어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5. 묘호(廟號): 여기서의 묘는 무덤이 아니라 사당을 말합니다. 즉, 사당에 올리는 이름을 뜻하는데. 주로 시호의 제일 앞 글자를 묘호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속에는 후손들이 이름을 통해 조상을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좋은 이름을 남긴 조상은 좋은 기억을 남기게 되고 그렇지 못한 조상은 나쁜 기억을 남기게 되었다. 후손들이 기억하는 조상의 이름에는 자(字), 호(號), 명(名) 등이 두루 포함되 어 있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자와 명이 중요하였다. 예컨대 개인 가문의 사당(祠堂)에 모시는 신주(神主)에는 그 사람의 관직, 성과 함께 자와 명을 썼다.
관직은 생전에 성취하였던 벼슬 이름이고, 성은 성씨, 명은 이름, 자는 유교의 성인식인 관례(冠禮)에서 받는 훈계성 의미의 두 글자였다. 이 중에서 관직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이 성취한 수준과 내용을 상징하였다. 이에 비해 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명과 자는 세상에서 성취하라고 어른들이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성씨, 그 성씨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구성원에게 희망하는 명과 자,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성취한 관직을 적어 놓은 신주는 작게는 해당자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 주며, 크게는 그가 속하였던 가문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성이 ‘홍(洪)’이고 이름이 ‘대성(大成)’이며 자가 ‘일신(日新)’인 사람이 ‘영의정’을 지내고 죽었다면, 그의 신주에는 ‘영의정홍공대성일신신주(領議政洪公大成日新神主)’라 썼다. 이 신주에 적어 놓은 글귀에는, ‘홍’ 씨 가문이 새로운 구성원에게 ‘대성’할 것을 기대하였고 아울러 대성하기 위해 ‘일신’할 것을 희망하였으며, 이 같은 가문의 요구에 부응하여 열심히 노력해 ‘영의정’에까지 올라간 그는, 홍씨 가문을 빛낸 훌륭한 조상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영의정홍공대성일신’이라는 인물은 비록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고 이 신주에 적힌 명과 자 그리고 관직을 통해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왕과 양반은 관례 때 자를 받았다. 양반들은 15∼20세 사이에 관례를 행하였지만, 왕의 적장자는 보통 8세 전후에 세자에 책봉되며 이때 관례를 행하였다. 여덟 살이면 사실 성인이 되기 이전이지만, 세자에 책봉된다는 사실 자체가 성인으로서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관례는 어른의 표시로 모자인 관(冠)과 성인 복장을 착용하게 하고 자(字)를 지어 주는 의식이었다. 본래 관례는 자신의 집에서 치르는 것이지만, 세자의 관례는 나이 많은 종친(宗親)의 집을 빌려 거행하였다. 대궐 정전(正殿)에서 관례를 치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관례 의식을 행하는 주례(主禮)는 보통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관리들이었다. 이때 두 글자의 자를 받았다. 예컨대 조선시대 태조의 자는 군진(君晉), 태종의 자는 유덕(遺德), 세종의 자는 원정(元正), 영조의 자는 광숙(光叔), 정조의 자는 형운(亨運) 등이었다. 이 같은 자에는 훌륭한 국왕이 되기를 기원하는 당시 왕실 사람들의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자는 관례 때 한 번 지어 평생 사용하였지만 호(號)는 그렇지 않았다. 짓고 싶을 때 자유롭게 지을 수 있는 것이 호였다. 짓는 주체도 타인일 수도 있고 스스로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호’는 ‘호칭’이라는 말 그대로 일종의 별명같이 사용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용(1762∼1836)은 '다산'(茶山)이라는 호(號)로 유명하다. 다산은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 초당 인근의 차밭이 있던 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정약용은 다산 외에도 여유병옹(與猶病翁),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 등 많은 호를 사용했다. 서재 이름에서 비롯한 여유당(與猶堂), 순종이 1910년 하사한 문도(文度)도 정약용의 호다.
호는 본명이나 자(字) 외에 쓰는 이름이다. 자는 본명을 소중히 여기던 시절에 사용한 또 다른 이름으로, 성년식인 관례를 치른 뒤 받았다. 호는 주어진 이름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본명이나 자와는 달랐다.
[출처] 어릴 때 이름, 자, (아)호, 휘, 시호, 묘호|작성자 Bruce
인터넷에서 율곡 이이(李珥)를 검색하면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그리고 호(號)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라고 나옵니다. 율곡 이이의 시호(諡號)는 문성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은 후까지 많은 이름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과 자 그리고 호에 대해서 공부해 봅니다. 호칭을 갖게 되는 순서는 이름(官名, 兒名) -> 자(字) -> 호(號) -> 시호(諡號) 순입니다.
1. 이름(官名, 兒名)
집안에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집안의 어른인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항렬을 감안해 이름을 짓게 됩니다. 만약 이 이름이 호적에 올라가는 이름이면 관명(官名)이 됩니다. 어릴 때는 정식 이름 외에 아명(兒名)을 같이 지어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안 어른이 지어준 이름을 매우 귀하게 여겼고 아랫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존명 사상(尊名思想)에서 출발했고 살아있는 분의 이름은 함(銜) 자라하고, 사망한 분의 이름은 휘(諱) 자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살아 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호칭할 때는 "제 부친의 함자(銜字)는 길자 동자"라 하고 사망한 경우는 "제 부친의 휘자(諱字)는 길자 동자"입니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휘명(諱名)은 사망한 분의 이름입니다. 묘지 앞 비석에는 강릉 김공 휘 길동(江凌 金公 諱 吉童)이라고 씁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도 세종이 성삼문을 부를 때 자(字)인 근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는 그가 세상을 막 살아온 세월이 말해주듯 막무식꾼이라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2. 자(字, 冠名)
어린아이가 자라 성인(成人)이 되면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이 드신 어른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자네"라는 호칭을 많이 씁니다. 이를 주로 피명(避名)이라 합니다. 다만 임금과 스승 그리고 부모는 이름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남자의 경우 나이가 20세, 여자는 15세가 되면 성인식에 해당하는 예(禮)를 했습니다. 남자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冠禮), 여자는 댕기머리를 풀고 쪽을 지어 비녀를 꽂는 계례(筓禮)를 했습니다. 이때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로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지어 주는데 이 이름을 관자(冠字)라 하고 자가 있으면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자는 주로 웃어른이나 성인식을 주관한 사람이 지어줍니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 자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합니다. 자도 이름과 같이 웃어른이 지어 주는 이름으로 함부로 부르지 못했다 합니다. 이름보다는 편하게 불렀으나 아랫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은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이이의 자는 숙헌이고 김정희의 자는 춘원인데 자(字)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3. 호(號)
호는 허물없이 부르고자 하여 만든 이름입니다. 성인의 본명과 자 또한 부모와 스승이 지어준 이름이라 함부로 부를 수 없어서 유교문화권에서 호(號)의 사용이 일반화되었습니다. 호는 친구나 아랫사람이 지어 줄 수도 있고 본인이 스스로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정희인데 본인이사용한 호만도 100가지가 넘었다 합니다. 이외에 몇 가지 호(號)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4. 시호(諡號)
죽은 사람의 살아있을 때 행적에 따라 임금인 왕으로부터 받는 이름입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 장군의 충무(忠武), 이이의 문성, 이황의 문순 등입니다.
5. 아호(兒號)
어린아이일 때의 다른 이름입니다.
[출처] 이름(名), 자(字)와 호(號)|작성자 moonkok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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