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 주머니를 터트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우리는 우주라는 그물의 '그물코'
농민신문 2024년1월5일자 18면 시인의 詩읽기 이문재(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에서 따옴
가끔 대척점을 생각한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지구 중심을 통과하면 닿게 되는 반대편 그곳, 우리나라의 대척점은 우루
과이 앞바다라고 한다.
우루과이 사람과 우리는 서로 다른쪽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다. 지구 반대쪽에서 머리가 아니고 발을 마주하고 있다.서로 거꾸로 서 있는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뭔가를 보아내는 '발견의 향연'이 아닌가. 달리 말하면, 연결된 것을 분리하고, 분리된 것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것, 이것이 관계를 (재)발견하는 능력, 즉 시적 상상력의 핵심일 테다.
우리가 함께 읽는 이정록의 시는, 우리가 관계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구인'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그려 보인다.
자동차를 몰다가 덜컹하는 순간은 낯설지 않다. 누구나 흔히 겪는일이다. 그런데, 놀라워라. 시인은 지구 반대편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떤 사람을 떠올린다.
그뿐이랴, 시인은 저 혼자 떨리는 술잔 앞으로 먼 전장터에서 비탄에 빠져 있는 한 소년을 데리고 온다. 촛불이 꺼질 듯하다 다시 살아나는 순간, 시인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촛불과 동행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저마다 우주라는 거대하고 정교한 그물의 그물코인 것이다.
이 '지구인'의 시가 마음 안쪽에 새겨졌다면, 이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장면도 심상치 않게 다가올 것이다. 반드시 누군가 혹은 그 무엇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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