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광(和光)>이란 빛을 늦추는 일이고, <동진(同塵)>이란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는 일 없이, 오히려 그 지혜를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동화함을 말하고 있다.
《노자(老子)》의 제4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道)는 텅비었으되 아무리 써도 늘 다함이 없으며, 깊어서 만물의 근본과 같다.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어지러움을 풀고, 그 지혜의 빛을 늦추고,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는 것이거니와, 물이 깊게 가득차 있는 것과 같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어도, 천제보다도 더 먼저 존재하는 것 같다.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乎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深乎似若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道는 얼핏 보기에는 공허하지만, 그 작용은 무한하다. 연못과 같이 깊어서 만물의 근원과 같다. 모든 날카로운 기운을 약하게 하고, 모든 어지러움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 세상의 티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道는 가득찬 물과 같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조물주인 천제(天帝)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 같다.
이 章은 노자의 소위 道를 설명한 것이거니와, <그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挫其銳)>이하의 12자는, 제56 장의 네 귀절이 뒤섞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확실히 이 제4 장에서는 네 귀절을 빼는 것이 뜻도 잘 통한다.
제56 장에서의 네 귀절의 뜻은 제4 장에서 읽는 것보다 분명해진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그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그 혼란함을 풀고, 그 지혜의 빛을 늦추고, 그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가히 얻어서 친하지도 못하고, 가히 얻어서 성기어지지도 않는다. 가히 얻어서 이롭게 할 수도 없으며, 해하지도 못한다. 가히 얻어서 귀하게 할 수도 없으며,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귀한 것이 된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爲天下貴.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앎을 말하지 않으니, 앎을 말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앎이 있는 사람은 그 이목구비를 틀어막고, 지혜의 문을 닫으며, 지혜의 날카로움을 꺾고, 지혜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을 풀고, 지혜의 빛을 늦추고, 그리고 속세의 티끌과 하나가 된다.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현동(玄同)의 사람에 대하여는, 친해질 수도 없고 성기어질 수도 없으며, 이득을 줄 수도 해를 줄 수도, 귀하게 할 수도 천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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