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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문외가설작라 門外可設雀羅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는 함께 漢나라 武帝에게 벼슬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고 탁월한 인물이었지만, 또 다같이 현직에 임명되었다가 좌천을 당하고 하여, 험난한 생애를 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에는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고, 좌천되면 손님의 방문이 끊어졌다.

 

《史記》에는 이 두 사람을 나란히 기록하여 급정열전(汲鄭列傳)이라고 실려 있거니와, 그들을 칭찬하는 글에서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은,

" 급암과 정당시의 현명함으로도 세력이 있으면 손님은 10배로 늘어나고, 세력이 없어지면 그렇지 않았다. 더구나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야 더욱 더 그러하다."

라고 한탄한 다음, 다음과 같은 적공(翟公-한무제 때 사람)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처음에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손님들이 문에 가득찼다. 면직을 당하자 문밖에 새그물을 쳐놓을 만큼 사람들의 출입이 없어졌다. 적공이 다시 정위가 되자, 다시 손님들이 오려고 했다. 적공이 이에 그 문에 큰 글씨로 써서 말하기를,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고,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됨에 사귐의 정을 곧 볼 수 있느니라.>

 

始翟公爲廷尉 賓客闐門, 及廢 門外可設雀羅, 翟公復爲廷尉 賓客欲往, 翟公乃大書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시적공위정위 빈객전문, 급폐문외가설작라, 적공복위정위 빈객욕왕, 적공내대서기문왈 일사일생 내지교정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일빈일부 내지교태 일귀일천 교정내견.

 

<門外可設雀羅>란 말은 이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門前成市>와는 반대로, 문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말한 것이다.

위에 당(唐)나라의 백락천(白樂天- 772~846)이 <우의시(禹意詩)> 가운데서 이렇게 읊고 있다.

 

    손님들은 또 이미 흩어지고, 문앞에 새그물을 친다.

                     賓客亦已散  門前雀羅張

                     빈객역이산  문전작라장

 

이 이후로 <門前雀羅張>이 일반적으로 쓰여지게 되었다.